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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갑자기 홀로 강릉행 결정..

by *후라이* 2021. 10. 24.

똑같은 일상이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게 너무 지겹기도 했고 

9시수업 4번이나 빠져서 F는 확실해졌고..졸업은 내년으로 밀리게 생겼고

솔직히 그냥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원래 혼자 다니는걸 좋아하고 즐기지만 여행만큼은 혼자 가본 적이 없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혼코노 혼영 혼밥 오프솔플 다 아무렇지 않게 잘 하고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할 때도 있지만 왜 여행만큼은 그랬을까? 새로운 환경,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혼자 뚝 떨어지게 되는게 무서웠던것 같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의지할 사람도 없고 모든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것도..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갈 만큼 집이 넉넉하진 못했지만 도전을 싫어했던 나와는 달리 새로운 곳,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 덕에 어릴적부터 정말 많은 국내여행지를 돌아다녔다. 중학교 때였나, 공기 좋은 강원도 산골에 있는 계곡으로 휴가를 갔을 때 첫째 날 밤에 정말 운이 좋게도 유성우가 떨어진다던 날이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잠든 두 동생과 엄마를 뒤로하고 풀벌레 울던 늦은 여름밤에 아빠와 나만 조용히 빠져나와서, 조명이라고는 저 멀리 희미한 가로등 하나밖에 없던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눈 깜짝할 새에 떨어지던 유성우들을 눈으로 쫓으며 잊지 못할 신비한 경험을 했던 기억은 아마 죽기 직전까지 생각날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그때의 중학생이 자라 2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검은 도화지에 반짝이가루가 가득 들어 있는 유리병을 들이부은 듯이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과 계곡 바위 위로 떼를 지어 조잘대며 흐르는 한여름의 시원한 물소리, 가을 단풍 틈으로 내리쬐는 제법 뜨거운 가을볕에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사랑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타고난 성정 탓에 가지고 있었던 아르바이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굳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쥐꼬리만한 용돈으로 간신히 영위 가능했던 대학생활 덕에 알바를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그만큼 돈을 늦게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서도 나보다 조금 더 언니들인 여행 유튜버들이 온갖 위험한 나라를 쏘다니고 다양한 도전을 서슴지 않는 영상들을 보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늘 마음 한켠에 품고 있었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내가 충분히 잘 해낼수도 있을것도 같은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에 일종의 기대감이나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도전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내가 할수 없는 일들을 해낸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질투나는 마음도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도 되게 충동적인 편이고, 거의 모든 사소한 결정을 내 감정에 흐름에 맡겨 왔지만 이렇게 큰 스케일(?)의 사안에도 충동적이었던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겁이 많다. 그렇지만 당장이라도 바다를 보러가지 않으면 안 될것 같았다, 그냥. 

오늘 아침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고, 혼자 가는 건 좀 무섭기도 하고 우울해질것 같아서 저번에 강릉을 같이 갔던 동생한테 제안을 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불발되었다. 다음주에 가자고 했지만, 일주일을 더 참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지겹고 끔찍하게 게으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솔직히 바다를 보고 내가 한없이 우울해질까봐 무섭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내 힘으로 마주하고 눈물이 터져버릴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서 혼자 안 가려고 했던건데.. 그냥 혼자 가야될것 같았다. 막상 가려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해보기로 했다. 가서 어떤 상황을,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갑작스러운 여행이 내게 조금이나마 어떤 새로운 마음을 먹게 할수도 있겠다는 소망이 들었다. 

 

갈 때는 설레는 마음을 증폭시켜주기 위한 기차를 정말 오랜만에 타기로 했고 (마지막으로 탄 기억을 돌이켜보니 19년 늦가을에 슈퍼클랩 사녹을 보러 상암엘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용산에서 홧김에 기차를 타고 수원에 30분만에 와버렸던 날 이후로는 없었던것 같다. 그때 왜 진작에 이렇게 왔다갔다 하지 않았나 싶어서 지금까지 힘들게 다녔던 모든 서울 오프가 스쳐지나갔었다 ㅋㅋㅋㅋ그리고 ㄱ그게 거의 마지막 오프가 될줄은 상상도 못했지..), 올때는 피곤하니까 그냥 자버리려고 문 열리는 곳 바로 앞좌석으로 시외버스를 예매했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처음 예약해봤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인테리어가 조명빨인진 몰라도 꽤 괜찮았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감성..ㅋㅋㅋ) 그런데 카드 결제를 세번이나 실패해서 깊게 빡치려고 하던 직전에 해결법을 찾아서 (통화 단위를 달러로 바꾸면 되었다) 예약을 했다. 기차 예약할때도 네이버페이 카드결제가 자꾸 오류가 나서 코레일로 하려고 했는데, 코레일은 또 결제방식 과정이 너무 직관적이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세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했다. 혼자 여행할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걸 책임져야 한다는걸 숙소와 차편 예약때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ㅋㅋㅋ ㅠㅠ 나..잘할수 있겠지?ㅠ

 

어찌됐든, 떠난다! 확실한 건, 이번주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다.